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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me Scene

에릭 에드거 쿡 - The Night Ca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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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에드거 쿡

 

에릭 에드거 쿡 (Eric Edgar Cooke) 은 호주 서부의 '퍼스(Perth)' 지역을 공포에 빠뜨렸던 연쇄살인범으로, 호주 범죄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사건은 무고한 사람들이 살인범으로 몰렸던 오심 사건과 연결되어 있어 더 유명하다.

 

에릭 에드거 쿡은 1931년 2월 25일 퍼스에서 태어나 1964년 10월 26일 33세의 나이로 처형되었다.

그는 1959년부터 1963년까지 퍼스 일대에서 최소 8명을 살해한 것으로 확인됐고, 그 밖에도 수많은 폭력, 침입, 살인미수 범행을 저질러, 당시에는 'The Night Caller' , 'Nedlands Monster'  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의 사건은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처럼 특정한 피해자 유형이나 하나의 살해 방식이 없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총격, 칼, 목조름, 둔기 공격, 자동차 공격 등 여러 방법으로 범죄를 저질러서, 당시 경찰은 처음에는 서로 다른 사건들이 한 사람의 범행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어린 시절

 

에릭 에드거 쿡은 1931년 서호주 퍼스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존과 크리스티나 쿡이었고, 비교적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그가 어린 시절 겪었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신체적 장애와 그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었다.

선천적으로 '구순열' 과 '구개열' 이 있었고, 이 때문에 외모와 발음에 어려움이 있었으며,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과 괴롭힘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아버지 '존 쿡' 은 엄격하고 폭력적인 사람이었으며, 쿡이 말을 더듬거나 행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에릭 에드거 쿡은 정규교육을 오래 받지 못하고, 10대 중반에 학교를 그만두었으며, 이후 안정적인 직업이나 사회적 기반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10대 후반부터는 절도와 주거침입 같은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하였는데,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물건을 훔치고 흔적을 남기는 방식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살인범이 된 뒤에도 이러한 침입 행동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성인이 된 그는 결혼을 하여 일곱 자녀를 둔 가장이 되었다.

직장에서도 평범하게 생활했고,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의 모습은, 밤에 범죄를 저지르는 위험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의 사건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신체적 장애와 따돌림과 가족 내 폭력이 사회적 고립을 불러왔고, 어린 나이부터 범죄를 저지르며 반복적인 투옥을 하면서 성인기의 폭력 범죄를 형성하는 장기적인 과정으로 보고있다.

 

 

 

범죄 내용

 

1. 주요 범죄 흐름

-10대 후반 

 절도, 주거침입, 자동차 절도, 방화 등을 반복하였다.

 

-1950 년 대 

 감옥에 드나들면서 범죄 경험을 쌓았고, 출소 후에도 주거침입과 절도 등을 계속하였다.

 

-1959 ~1963 년

 퍼스 일대에서 살인과 살인미수를 저질렀다.

 

-1963 년

연쇄적인 총격 사건으로 퍼스 시민들을 극심한 공포에 빠뜨렸다.

 

2. 주요 사건 내용

 

-질리언  브루어 살해 사건 (1959 년)

'질리언 브루어' 가 퍼스 교외 코테슬로에서 살해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대릴 빔시' 라는 청각장애 남성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훗날 쿡이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하였다.

 

-로즈메리 앤더슨 살해 사건 (1963 년)

17세 '로즈메리 앤더슨' 이 차량에 치어 사망하였다.

그녀의 남자친구 '존 버튼' 이 범인으로 몰려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쿡이 자신이 훔친 차량을 이용해 그녀를 살해했다고 자백하면서 사건이 뒤집혔다.

 

-1963 년 '호주의 날' 주말 총격 사건

쿡은 퍼스에서 총을 이용해 여러 사람을 공격했고, 5명을 쏘아 3명을 살해하였다.

피해자를 특정해 계획적으로 공격했다기보다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공격했다는 점에서 당시 퍼스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셜리 맥클라우드 살해 사건 (1963 년)

대학생 '셜리 맥클라우드' 가 총에 맞아 사망하였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수사가 집중되었고 결국 쿡이 체포되었다.

 

체포 와 재판

 

1. 체포

1963년 8월, 퍼스에서 '셜리 맥클라우드' 가 총에 맞아 살해되었는데, 이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쿡을 용의자로 좁혀갔고, 1963년 9월에 쿡을 체포하였다.

경찰은 쿡을 체포한 뒤 그의 행적과 범죄 전력을 조사했고, 결국 쿡이 여러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쿡은 일반적인 살인 용의자와 달리,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자백하기 시작하였다.

단순히 '내가 했다' 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범행 장소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를 통해 경찰은 서로 별개의 사건으로 생각했던 여러 범죄가 한 사람의 범행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2. 재판

쿡은 1963 년 11월 28일 살인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에서 그의 변호 측은 '정신이상' 을 이유로 형사책임을 제대로 질 수 없는 상태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사형 판결이 확정되었다.

쿡은 자신의 범죄를 상당 부분 인정했으며, 경찰에게 자신이 저지른 범행들을 설명하면서 경찰이 알고 있던 사건보다 훨씬 많은 범죄를 털어놓았다.

 

3. 처형

쿡은 항소 절차를 거쳤지만 결국 사형이 집행되었다.

 

1964년 10월 26 일, 프리맨틀 교도소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는데, 그의 나이 33세였다.

그는 서호주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의 의의

 

1. 호주 연쇄살인 수사의 대표적인 사건

쿡의 범행은 피해자와 수법이 일정하지 않아 경찰은 처음에는 각각의 사건을 서로 연결하지 못했다.

결국 쿡의 자백을 통해 여러 사건이 하나로 연결되었다.

이는 당시 경찰에게 서로 다른 사건에서 반복되는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범죄를 연결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2. '오심' 의 문제

실제 범인은 따로 있었는데 '대릴 빔시' 는 '질리언 브루어' 살해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존 버튼' 은 '로즈메리 앤더슨'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쿡이 자백을 하면서 두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을 잡았다고 해서 반드시 진범을 잡은 것은 아니다' 라는 사법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를 보여준다.

특히 당시 수사기관이 자백이나 특정 용의자에 대한 초기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무고한 사람이 범인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위험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3. '자백' 의 위험성

역설적이게도 쿡의 자백은 진실을 밝혀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현대 형사사법의 관점에서는 여기서 또  '용의자의 자백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 하는 의문을 만든다.

 

경찰은 자백을 그대로 맏는 것이 아니라 범행장소, 시간, 피해자의 상태, 사건 현장의 물증 등 독립적인 증거와 대조해 검증해야 한다.

 

쿡 사건은 이런 자백의 증거가치와 검증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맏느는 사례이기도 하다.

 

4. 당시 수사기술의 한계

쿡 사건은 현대 과학수사와 범죄 데이터베이스가 왜 필요한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례가 되었다.

 

5.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 범죄자' 에 대한 교훈

쿡은 가족이 있는 가장이었고, 사회생활도 했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이 그를 위험한 인물로 인식하지는 않았었다.

이 사건은 '흉악범은 겉으로도 흉악해 보일 것이다' 라는 고정관념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6. 피해자뿐 아니라 '잘못 처벌받은 사람' 의 삶도 범죄의 결과라는 점

진범이 잡힌 뒤에도 '대릴 빔시' 와 '존 버튼' 의 잃어버린 시간과 삶은 완전히 되돌릴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범죄의 피해자를 생각할 때 단순히 살해당한 피해자뿐 아니라, 잘못된 수사와 재판 때문에 인생을 빼앗긴 사람 역시 피해자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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